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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999
2013.05.26 (15:49:41)

 

 

WCC(세계교회협의회)에 대하여

WCC 총회가 금년 10월 30일(수)~11.8(금), 부산 벡스코에서 열립니다.

귀한 성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WCC는 전 세계 140개국의 정교회와 개신교회들 349개 교단과 그 속에 속한 5억 6천만이 속해 있는 세계 최대의 연합기구이며 한국에서는 정통교회인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한국정교회 대교구가 회원교회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인 교회연합기구입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WCC총회는 한국의 회원교회뿐 아니라 정부차원에서도 환영하며 협력하고 있는 세계 기독교의 신앙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일부 교회와 심지어 기성교회를 음해하려는 소수이단세력들이 온갖 허구와 거짓 증거로 WCC에 대한 음해를 하려는 일까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WCC의 공식자료를  직접인용하면서 몇 가지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바른 설명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WCC 란 무엇인가?

 

WCC 논쟁과 관련하여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WCC에 대해 잘 모르고 한다는 점이다. WCC를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WCC에 대하여 잘 모르고 있다. WCC는 무엇인가? WCC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WCC, 즉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는 전 세계 140개국에 산재한 349개의 정교회와 개신교회가 공동의 신앙고백을 하고 공동으로 선교하고 공동으로 지구사회에 봉사하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연합체이다. 그러나 WCC가 규모보다 더욱 중요하게 추구하는 것은 신약과 구약에 나타난 두 핵심적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신앙적 응답 때문이다.

 

첫째로 WCC의 목적은 예수님의 기도를 응답으로 성취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구원사역을 다 마치시고 잡히시기 직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최후 기도를 드린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예수님의 최후의 기도의 핵심적 목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세상의 모든 인류와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이 믿게 하는 선교이기도 하다. WCC의 직접적 목적은 바로 예수님의 이 기도에 응답하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WCC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시고 장차 완성하실 그 한 세계를 지향하는 신앙운동이다. WCC가 전개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말의 어원인 희랍어 ‘오이코스’(Oikos)는 ‘집’, ‘가정’이란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전 우주를 ‘하나님의 집’으로 본다. 에큐메니칼이란 말은 희랍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온 말로서 그 뜻은 ’하나님의 집에 사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식구들‘, 에베소서 2:19절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의 권속‘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고 번성하며 살라고 하셨다(창 1-2장). 창조 후 하나님은 ”보기에 좋다“고 만족해 하셨고 사람을 지으시고는 ’매우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집 이름을 ’기쁨‘이란 뜻인 ‘에덴’으로 지으셨다. 인간의 타락 후 이 하나님이 기뻐하신 조화로운 세계가 깨어졌는데 이 깨어진 하나님의 한 세계, 한 가족을 회복하는 것이 곧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계획, 원대한 구원계획에 응답하는 교회의 신앙적 응답이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곧 복음적 운동이다. 에큐메니칼 비전을 반대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비전을 반대한다는 말과 같다. 진실로 에큐메니칼 하면 에반젤리칼 하고, 진실로 에반젤리칼 하면 에큐메니칼 해야 한다.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WCC가 창설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세계 제1, 2차 대전이었다. 역사적으로 유럽이 기독교 국가였는데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대륙에서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 순전히 인간의 이념 때문에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이후 유럽교회들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우리가 소위 기독교국가들이고 세계문명을 기독교문명으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세계선교를 했는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있는가?” 그래서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 국제연합을 만들어 다시는 전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일어났는데 교회는 신앙적 차원에서는 세계교회를 함께 모으는 WCC를 창설하여 하나님의 본래의 명령을 이 시대 속에 이루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WCC는 오랫동안의 준비를 거쳐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WCC를 창립했다. WCC는 분열만 하는 세계와 세계교회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되어야 하는 명제를 붙들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바로 서고 복음의 명령에 신실하게 응답하려는 세계교회들의 참회운동이고 신앙고백운동이다.

 

 

1. WCC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 WCC에는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는 오해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안에는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 불교, 심지어 시민단체도 가입되어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WCC의 존재근거의 시작인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Fellowship, Koinonia)이다.” 라고 그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WCC는 교회들의 연합체이고 교회가 아니면 WCC에 가입할 수 없다. 심지어 NCC도 가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NCC가 WCC의 산하단체인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협력단체일 뿐이다.

 

WCC에 가입하려면 가입하고자 나는 교회의 신앙고백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것이 WCC 헌장 1조의 신앙고백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서류심사가 통과되면 같은 지역의 기존 회원교회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는다. 한국의 경우 회원교회인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한국정교회대교구의 동의를 구하게 되는데 이 중 한 교회라도 반대하면 가입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는 교회는 참여할 수 없다. 심지어 기독교기관도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만이 아니라 마호메트, 석가모니, 심지어 모택동까지 신봉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 무근이며 거짓 증거이다. WCC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공동증언, 공동봉사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2. WCC는 다양성속의 일치를 추구한다.

: WCC가 모든 교파를 통합하여 단일교회를 만들려 한다는 의심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가 세계의 모든 교단을 통합하여 세계단일교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의구심은 합동과 통합의 분열명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WCC는 최초부터 단일교회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지금 단일교회가 되지도 않았다. WCC가 추구하는 일치는 획일적 일치나 기구적 일치가 아니고 다양성속의 일치이다. 즉 개 교회의 보편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로 연결되는 것을 지향한다. 이것은 1950년 토론토에서 열린 중앙위원회가 “세계교회협의회는 단일교회도 아니고 결코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그 성격을 규정한데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WCC가 항상 강조하는 일치는 다양성속의 일치이다. “WCC의 기초가 되는 강령들” 8항에 따르면 “WCC 회원교회는 서로 영적 관계 속에 들어가 서로 배우며 서로 도와주어 그리스도의 몸을 굳건히 세우고 교회의 삶이 갱신되도록”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함에 있어서 1항에서 “WCC 회원교회들은 대화를 하든지 협력을 하든지 교회의 공동증언을 하든지 모든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거룩한 머리라는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서 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WCC는 이렇게 세계교회가 다양하지만 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다양한 지체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정통 기독론(451년 칼케돈신조)과 정통 삼위일체론(381년 네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을 배경으로 하는 ‘교리헌장’을 공통분모로 하여 ①사도적 신앙의 공동이해, ②성례전의 상호인정, ③권위 있는 공동의 가르침과 결의구조 등을 함께 하는 교회의 협의회적 친교를 추구한다. 이것이 곧 WCC가 추구하는 가시적 일치이다. WCC는 ‘일치는 교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각 교회는 보편적 교회지만 전체는 아니다. 각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거룩한 교제로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그 보편적 교회성을 (온전하게) 성취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사도신경의 우주적 공교회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

 

 

3. WCC는 성경의 권위 위에 굳게 서 있다.

: WCC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한다는 낭설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혹은 성경 전체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위에 굳게 서 있는 한국의 회원교회들을 비롯한 전 세계 349개 교회들의 교제인 WCC는 성경의 권위위에 굳게 서 있다. WCC 정신의 근간이 되는 헌장 제1조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는 성경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하여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 라고 WCC의 존재기반이 성경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WCC의 성경관을 확연히 밝히고 있는 1978년 방갈로문서에 따르면 성경은 ‘전 창조세계와 민족들과 개개인의 삶을 다루고 계시는 한 분이며 동일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책이라고 전제하고 신약의 특수성을 ① 하나님을 계시한 예수 그리스도, ② 성육신이 되신 말씀, ③ 화해의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④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하나님에 의한 희망의 역사 완성, ⑤ 성령을 통한 구약의 메시지의 보편화 ⑥ 구약성서와 신약성경의 상통성 등으로 밝히고 있다. 동 문서는 구약의 특성으로 ① 하나님을 창조주, 역사의 주, 정의의 심판자로 계시 ② 하나님의 거룩성과 피조물에 대한 애타는 사랑 강조, ③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창조와 자연에 대한 관심, ④ 개인의 도덕과 윤리뿐 아닌 구조악의 변혁에 대한 요구, ⑤ 공동체성과 현세에 대한 관심 강조 등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WCC의 대부분 문서는 어떤 신학적 주장을 할 때 성경 인용을 하면서 성경적 근거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WCC는 성경을 믿지 않는다거나 부인한다는 것은 거짓 증언이다.

 

 

4.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신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구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부정하고, 석가, 마호메트, 공자, 모택동 등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며 구주로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 WCC는 헌장 제1조에도 이렇게 밝히고 있지만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가진 창립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선포했다: “세상을 위한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세상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선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하신 말씀으로서 사셨고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이 악의 세력을 단번에 부수시고, 모두가 성령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도록 문을 여셨다. 그리고 모든 인간의 역사와 각 개인의 행위에 대한 최후 심판이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심판이 될 것이며,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의 나라의 승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이 세상을 사랑하셨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이다.

 

이 메시지는 WCC가 창립하면서 세계 앞에 공표한 것으로서 WCC의 공식적 입장이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하신 것을 시작으로 하여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최후의 심판과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의 희망의 역사로 이끄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믿음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WCC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다거나 다른 피조물과 동격으로 놓는다는 주장은 거짓된 주장이다.

 

 

5. WCC는 편파적 신학이 아닌 온전한 신학을 추구한다.

: WCC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 일변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WCC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회원자격요건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이중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WCC의 교회일치노력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교회일치를 위한 WCC의 기본원칙은 ‘다양성속의 일치’ 혹은 ‘다양성 속의 코이노니아’이다. 교회의 최대 아픔중의 하나인 교회분열의 명분은 항상 교리에 대한 이해차이였다. WCC안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 속에 있는 349개의 다양한 교회가 있다. 신학적 이해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한 교파의 신학을 다른 교회에 강요할 수 없다. 따라서 WCC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를 통해 세계교회간에 신학과 교리의 차이에 대해 늘 대화하면서 공통의 분모를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WCC는 각 교회가 처한 상황을 반영한 신학적 다양성을 상호 인정하면서도 정통 기독론(451, 칼케돈신조)과 정통 삼위일체론(38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을 배경으로 하는 ‘교리헌장’을 공통분모로 하는 다양성 속의 일치, 다양성 속의 코이노니아를 늘 추구해 왔다. 따라서 WCC는 회원교회가 가진 다양한 신학을 함께 성찰하면서도 그 다양한 신학적 사고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일치점을 항상 추구하는 온전한 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WCC 반대자들은 WCC의 사회참여와 시대의 도전에 응답하는 복음의 증언을 자유주의 신학으로 규정하는 것 같다. 이것도 WCC의 복음이해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잘 모르는 이해부족이다. WCC의 신학이 사회참여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던 정통복음주의권인 로잔언약 그룹도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에서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형태의 소외, 억압,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임도 의미한다.”며 ‘기독교 사회적 책임’을 선언함으로써 복음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제2차 로잔 복음주의자세계대회(1989, 마닐라)와 “제3차 로잔 복음주의자세계대회(2010, 케이프타운)로 이어진다. 2012년 3월 마닐라에서 열렸던 WCC선교대회에 참여한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의 선교는 ‘온전한 교회로서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온전하게 증거하는 것’이라는 WCC의 선교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복음의 통전적 넓이에 공감을 표현하였다. 세계교회에는 이처럼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의 공감대가 넓게 형성되고 있다.

 

 

6. WCC는 선교와 전도를 교회의 존재가치로 고백한다.

: WCC는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가 다원주의를 신봉하며 개종전도금지를 선포했다고 하는데 WCC는 결코 개종전도금지를 선포한 적이 없다. 이것은 WCC의 생성동기나 역사나 현재의 선교노력,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 하는 말이다. WCC가 태동한 모태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WCC 제1차 총회 메시지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아직 수많은 동료인류가 복음을 듣지 못했다. 우리가 여러 대륙에서 여기에 모인 지금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교회를 독려하시어 복음이 세상 만방에 전해지도록 하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사랑 안에 살며 그가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기를 기도한다.” 또한 1982년에 발표한 WCC 공식선교문서인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 확언」이란 문서를 보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이 임무는 하나님의 나라의 세포인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섬기는 교회가 모든 인간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데 어떻게 WCC가 개종전도금지주의를 선포했다고 하는가?

 

WCC는 2011년 세계복음주의연맹과 로마카톨릭교회와 더불어 선교에 대한 행동강령에 합의한 바가 있다. 이 합의는 모처럼 복음주의권과 에큐메니칼권과 로마카톨릭교회까지도 선교강령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는데 큰 뜻이 있는데 혹자는 이 문서에서 다른 종교가 강세인 지역에는 선교를 하지 않는다는 입장표명같은 것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교회의 본질이 선교’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이 문서는 그리스도인의 복음전도는 그 표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행해야 하며, 복음전도는 어떤 국가나 어떤 문화나 어떤 체제도 막을 수 없다는 ‘신앙의 자유’를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또한 다종교 사회 속에서 복음전도를 할 때는 타인에 대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도활동을 함에 있어 속임수나 물질공세나 강압적 수단과 같은 부적절한 방법을 쓴다면 이것은 곧 복음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Proselytism)이고, 역증거 혹은 ‘증거의 부패’가 된다는 말이다. 사실 에큐메니칼운동이 염려하는 것은 기독교교회간의 양 훔치기식 전도방식이다. 예를 들면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기존 교회가 있는 500미터 안에는 교회개척을 할 수 없도록 하는데 이 규정을 세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20세기 초 에큐메니칼운동이 시작된 동기 중의 하나도 바로 이 문제이다. 19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후 자본주의권의 교회가 러시아와 같은 동구권에 들어가 가전제품 같은 물질을 상품으로 걸고 전도운동을 할 때에 이 문제가 극심했다. 이것은 복음을 상품화하는 행위이므로 이런 식의 전도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 WCC에 참여하는 교회들의 생각이다.

 

 

7. WCC의 선교유예선언은 아프리카교회의 자립성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 WCC는 선교유예를 선언함으로써 선교를 포기했다는 거짓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가 선교유예(moratorium)를 선언하고 더 이상 선교하기를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인용하는 선교유예는 케냐의 동아프리카 교회 지도자인 존 가투(John Gatu) 목사가 선언한 것인데 그가 선교유예를 선언한 내용의 문맥을 살펴보면 결코 선교를 포기하거나 중지선언하지 않았다. 가투 목사가 선교유예를 절규한 이유는 아프리카 교회의 독립과 자립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아왔다. 수백 년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아프리카 교회가 계속 서구교회의 선교사들과 선교자금에 의지한다면 결코 자력으로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프리카교회가 아프리카 상황 속에서 선교를 수행할 능력을 키우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정부들과 국민들이 경제적, 사회적 의존성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바로 선교자금과 선교사를 계속 받는 것을 중지하는 선교유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선교유예론이었다. 말하자면 자력으로 선교하고 목회하는 교회가 되려면 서구교회로부터 선교사와 선교자금을 받는 것을 중지해야하며 그래야 아프리카 교회는 자립할 수 있는 교회가 된다는 요지이다. 이 속에는 아직도 그 숙제가 풀리지 않는 아프리카 정부들과 국민들의 경제적 자립, 정치사회적 독립까지도 염두에 둔 깊은 고뇌의 선택인 것이다. WCC가 1982년에 발표한 공식선교선언문인 「선교와 전도-에큐메니칼 확언」이란 성명서에는 “선교의 유예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좋은 선교를 위한 선교유예는 언제든지 가능하며 어떤 때는 필요할 것이다.”라고 선언되어 있다. 선교유예는 선교중지나 포기가 아닌 더 좋은 선교를 하기 위함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사상 드물게 교회성장과 자립성을 동시에 이룩한 교회이다. 여기에는 한국 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선교방식도 큰 영향을 끼쳤다. 네비우스선교방식은 ‘자치, 자립, 자전'의 원칙이다. 아프리카 교회가 선언한 선교유예는 바로 아프리카 교회가 자치적, 자립적, 자전적 교회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것은 오늘의 한국교회의 자립적 성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네비우스선교방법의 아프리카 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피 선교교회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교회성숙의 과정중의 하나이다.

 

 

8. WCC가 사회선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전적 선교를 한다.

: WCC는 사회선교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은 WCC는 사회선교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 WCC를 전체적으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가 사회선교를 열심히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WCC활동에는 양대 흐름이 있다. 하나는 ‘신앙과 직제’흐름으로 신앙과 일치 문제를 다루는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삶과 일’흐름으로 복음의 실천적 증언을 다루는 분야이다. 여기에 ‘선교와 전도’, ‘에큐메니칼교육’이 덧붙여져 WCC활동의 4대 분야를 구성한다. 여기에서 ‘삶과 일’의 흐름은 다시 두 분야로 나뉘는데 한 분야는 인권운동, 평화운동, 정의운동과 같은 사회적 증언운동이고 또 다른 분야는 긴급구호, 재해구호, 재건 등의 봉사활동이다. WCC 창설직후에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을 재건하는 일이 WCC의 주된 사회선교영역이었다.

 

이런 WCC의 통전적 활동이 한국에는 사회선교, 정치참여로만 각인된 데는 한국의 70년대 80년대 상황과 관련이 있다. 70, 80년대 한국의 정치사회상황은 군사독제, 인권침해, 민주화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던 시기였다. 이 상황 속에서 WCC는 한국의 인권신장,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공동선교, 협력선교, 기독교연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독재정권으로부터 반정부운동으로 비춰졌고 따라서 당시 정권은 WCC가 정치집단, 용공세력, 반정부단체라고 역선전하였다. 이 때문에 ‘WCC는 사회선교에만 관심이 있다, 정치집단이다. 반정부집단이다, 불온한 단체이다.’라는 각인이 찍혔다. 그러나 WCC의 이러한 연대는 한국의 민주화, 인권신장, 사회정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늘 동행하며 민족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옴으로써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교회와 ‘짐을 서로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갈 6:2) 세계교회의 공동선교활동이라고 보아야 옳다.

 

WCC의 사회적 증언은 단순한 사회참여 차원이 아니고 ‘성경적 근거’와 ‘신앙적 부름’때문에 이루어지는 복음증언이다. 인종주의에 대한 WCC의 입장이 그 한 예이다. 1954년 제2차 에반스톤 총회에서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총회는 '인종, 피부색, 종족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고 모든 회원교회가 자신들의 삶과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나치주의에 대한 독일 고백교회의 바르멘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 이외의 어떤 주권도 인정할 수 없는 독일교회의 신앙고백 행동이었고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고 격리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대한 저항은 그리스도 안에 어떤 인종차별도 있을 수 없다는 복음을 거역할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바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룬”(고전 12:13) 교회가 인종차별을 한다면 이것은 복음에 대한 배반이고 속임이다. WCC가 인종차별철폐를 한다거나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평화를 세우는 일은 사회참여, 정치참여가 아니라 그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복음의 선포이자 신앙의 증언이다.

 

 

9. WCC는 복음의 가치가 인간의 이념보다 상위라고 선언한다.

: WCC는 용공 및 게릴라 자금지원단체라는 허위 주장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의 또 하나 비판은 WCC는 용공단체이며 공산게릴라에 자금을 대주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산권에 있는 교회들이 WCC에 가입하고 있으니 용공단체가 아니냐는 식이다. 사실 관계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오히려 복음과 교회를 인간의 이념에 종속시킬 수 있는 행위이다. WCC의 기본입장은 ①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한다. ② 인간의 어떤 이념이나 정치체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부여신 인권, 자유, 평화, 신앙의 자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책임적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 입장은 WCC 창립총회부터 나타났다. 그 때 자본주의권과 사회주의권에서 온 대표들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을 때 WCC는 ‘교회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이념도 지향해서 안 되고 “어떤 인간의 문명이나 이념도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며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우선하며 기독교인은 어떤 체제 속에 있더라도 책임적 사명을 다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WCC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 그 교회가 어떤 정치체제 속에 있더라도 회원교회로 받아들인다.

 

WCC를 용공단체로 낙인찍은 일은 미국의 극우반공주의자 칼 메킨타이어와 그가 이끄는 국제기독교교회협의회(ICCC),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은 남아공 인종차별백인정권이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석방될 때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정권은 백인, 흑인, 유색인종을 철저히 분리하는 인종분리정책을 써왔다. WCC는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 인종차별은 단순한 인권문제가 아니라 복음과 위배되는 신앙적 문제로 인식하고 ‘인종차별철폐운동’을 전개한다. 이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끄는 흑인해방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미국의 백인보수세력과 유럽의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는 세력들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웁살라총회에서 주제연설을 하게 되어 있었으나 직전에 암살당했다. 또한 당시 아프리카 도처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이것도 과거 식민지 지배를 하던 서구의 보수세력에게는 크게 위험시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WCC를 비롯하여 인종철폐운동과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모든 단체들을 용공세력으로, 그들이 지원하는 운동을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매도했다. 남아공 백인정부를 대변하던 ‘아프리카 인스티튜트 뷸러틴’에 실린 ‘테러후원’이라는 글에는 테러후원단체가 망라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WCC뿐 아니라 UN, 아프리카일치기구(OAU), 아프리카교회협의회, 영국교회협의회, 심지어 미국연합장로교회까지 공산주의를 지원하는 테러후원세력으로 분류했다. 로데시아 반군 자금지원설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것이 게릴라지원운동이라면 한국의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지원도 모두 게릴라지원이 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교회는 세상이념이나 세상 권력의 시녀가 되어서 안 된다.

 

WCC는 동서가 이념으로 갈라져 있을 때 꾸준히 공산권에 있는 교회들을 WCC에 참여시키며 세계교회와 교제하게 했다. 그 결과 1990년대 공산권이 해체되었을 때 교회가 그나마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고 러시아나 동구권 교회 안에 세례희망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우리 한국교회는 WCC를 용공이라 비난할 것이 아니라 WCC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북한선교에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던 1980년대에 북한에 신앙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 그리고 교회가 존재하는데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바로 WCC이기 때문이다. WCC의 교섭과 활동으로 북한에는 1983년에 분단 후 처음으로 성경찬송 5천부가 인쇄되었고 1988년에는 평양봉수교회가 건립되었다. 1986년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그리스도인들을 제네바에 초청하여 남북교회가 만나게 했고 이후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을 세계로 불러내 세계교회와 교제케 했다. 교회는 월남했어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월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면서 에스겔 37장에 유다와 이스라엘, 남과 북을 통일시켰듯이 북한교회와 남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일을 하셨다고 믿는다. 이 하나님의 역사를 도운 것이 WCC이다. WCC는 용공단체가 아니라 공산주의체제 속에 있는 교회도 지켜온 선교단체이다.

 

 

10. WCC는 기독교신앙에 굳게 서서 종교 간의 대화를 도모한다.

: WCC는 다원주의를 조장한다는 거짓 증거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이 근자에 가장 많이 제기하는 문제가 WCC가 다원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도 WCC가 왜, 종교 간의 대화를 해 왔는지, 어떤 입장으로 해 왔는지를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WCC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두고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그러나 WCC가 종교 간의 대화를 할 때 기독교신앙을 벗어나서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WCC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다른 교파들 사이에 교리적 일치를 이루는 것인데 성찬에 관한 교리가 달라서 아직 회원교회가 성찬도 같이 나누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데 어떻게 기독교교리를 타종교의 교리와 섞는 것을 시도할 수 있겠는가?

 

WCC가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아랍 국가들처럼 다른 종교가 국교나 다수인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서 기독교신앙으로 개종하는 개인이나 교회의 활동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들의 신앙과 교회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장치가 필요해서 종교 간의 대화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세계평화와 인류공동의 과제를 위한 협력을 위해서이다. 3.1운동 때 천도교, 불교,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독립선언을 선포한 예가 바로 민족공통의 문제를 위해 종교 간에 협력을 한 예이다. 9.11 테러 이후 종교가 국가나 문명 간의 갈등에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 간의 협력의 필요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 경우 협력을 할 뿐이지 결코 교리적 사안은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세 번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의 신앙적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은 전 역사의 하나님이시고 만유의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상황에서는 어떻게 역사하실까?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는데(요1:1) 기독교복음이 전해지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만유 안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으며 하나님의 영 역시 오순절 이전부터 역사와 창조 속에 현존하시고 사역하셨다면 이것이 모든 종교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종교간의 대화 이면에는 이런 신학적 질문이 늘 있다. WCC의 종교 간의 대화는 1961년 뉴델리 총회 이후 본격화 되었지만 종교 간의 문제에 대해 처음 입장을 밝힌 것은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국제선교대회가 발표한 「세계를 향한 부름」이란 성명서이다. 요지는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비추신 생명의 빛이시다. 빛은 안 비추이는 곳이 없다. 따라서 비록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빛으로 비추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종교 간의 대화라기보다 선교선언이 아닌가?

 

WCC가 다원주의라고 비판하는데 주로 인용되는 문서인 바아르문서 「종교적 다양성: 신학적 관점과 확언」에 보면 첫 문장이 이렇게 되어 있다. “종교 간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이해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만물 속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접근할 때 ‘기독교신앙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이다. 초월적인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역사와 창조세계 안에 내재하시면서 구원의 사역을 계속하신다.

 

또 하나의 비판은 WCC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구원이 온다고 한 것을 회개한다고 했다는 비판이다. ‘회개’란 말이 나온 문서는 1979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발표한 「다른 신앙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 지침서」이다. 그러나 거기에 나오는 회개란 말은 종교개혁 정신의 회개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수용자란 사실을 망각하고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회개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구원의 은총에 대하여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참여하는 것이지, 그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이다. WCC는 결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 지침서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과 증거를 분명히 하면서 대화에 임하라.”고 거듭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WCC를 다원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1. WCC는 혼합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 정현경의 켄베라 총회주제 강연 비판에 대하여

 

WCC 캔베라 총회에서 행한 정현경 교수의 주제강연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당시 WCC총회에서도 많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정교회는 아주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발표는 WCC가 복음과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교회 대표의 주제발표가 정통 삼위일체의 성령에 대한 성찰에 집중한 반면 정현경의 발표는 문화적 접근을 하였다. 정현경은 초혼제의 문화의식을 하면서 성경 속에 있는 인물과 인류역사 속에 부당하게 죽임당한 영들을 한 맺힌 영으로 보고 그들의 영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제발표의 본문에 해당하는 신학적 성찰에는 문제가 없다. 성령은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이미 계시며, 창조와 생명의 바람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생명의 영은 당신의 백성을 출애급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시고, 교회를 해방적 공동체로 시작하신 바로 그 영이시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성령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라고 지적하고 인간중심주의, 이원론적 사고, 죽음의 문화에서 회개하고 생명중심주의, 상관성주의, 생명의 문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는 회개의 촉구를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오소서 성령이여,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아멘"하고 마쳤다.

 

정현경의 주제발표 본말은 기독교성령론의 이해를 따르고 있고 도전부분에는 성령의 역사를 물신주의, 생태위기 등 인간과 지구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과 잘 연결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본문 서두에는 신학적으로 심각한 오류가 있다. 한 맺힌 영혼을 부르는 목록의 끝에 예수의 영도 열거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은 앞에 열거한 한 맺힌 영들과 동격이 아니다. 예수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의 희생과 죽음은 만물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자신의 내어주심’이므로 한 맺힌 영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없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정교회 쪽에서 “개인의 영이나, 세상의 영이나, 다른 영들을 성령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무속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한 점이다. 사실 이 점은 WCC가 종교간 대화 지침서에서 이미 경고한 내용이기도 하다. WCC는 ‘성경을 번역할 때 번역하는 문화의 내용을 너무 차용하든지 아니면 다른 문화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본질이 모호해 질 수 있음으로 주의하라’고 했다. 정현경이 취한 무속초혼형식은 바로 이 주의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이런 선을 넘은 예가 많다. 예를 들면 성탄절은 이제는 예수님의 생일이 되었지만 원래는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고 로마 태양신 아들의 생일이었는데 바로 그 아들이 예수님이란 의미로 고대기독교에서 채용을 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부를 때 중국문화전통에서 부르던 ‘상제(上帝)’란 개념을 채용했고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 하나님을 부를 때 이슬람이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 “알라”(Alla)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처럼 기독교는 다른 문화권과 만날 때 일정부분 서로 형식의 차원에서 융합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질은 늘 지켜야 한다. WCC는 이를 지키려고 늘 조심하고 있다. 정현경의 주제발표는 문화속에서 성령을 숙고해 보려는 한 개인의 입장이지 WCC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다. 개인적 영성순례행보는 전통적인 기독교인으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보는 WCC와 무관하다.

 

 

12. WCC는 인간의 성(性) 전반에 대한 성찰을 한다.

: WCC가 동성애 지지 결의를 했다는 허위에 대하여

 

WCC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 중에 가장 허망한 것이 동성애 문제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WCC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어떤 공식적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WCC는 인간의 성(性) 문제를 50년 전부터 다루어왔다. 그러나 동성애를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해 다루어왔다. WCC가 성 문제를 최초에 다룬 것은 제3차 총회(1961, 뉴델리)에서였다. 여기에서는 혼전경험, 성폭력, 축첩, 부적절한 관계, 단기혼인, 쉽게 하는 이혼, 종교가 다른 사람, 혹은 교파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 다문화결혼 등 인간의 성 전반에 관한 문제가 다루어졌다. 제4차 총회(1968, 웁살라)에서는 위의 문제에 덧붙여 피임, 산아제한, 가족계획, 낙태 등의 문제가 추가되었고 동성애 문제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웁살라 총회는 성문제는 교회 안에서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문화와 문명에 따라 아주 다양한 관습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해보도록 권고하였다. 제6차 총회(1983, 뱅쿠버)와 제7차 총회(1991, 캔베라)에서는 생명공학의 발달이 인간의 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제와 여성의 성, 성과 인간관계 등 문제가 토론되었다. 캔버라 총회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교회분열을 야기할 수 있고 민감한 문제이므로 여기에 대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대화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제8차 총회(1998, 하라레)를 준비하면서는 아프리카 짐바브웨가 동성애자들을 체포한데 대한 인권적 차원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8차 총회를 기점으로 인간의 성에 대한 연구를 성지남력(sexual orientation)차원에서 인간의 성(human sexuality) 전반에 대한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WCC가 동성애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성의 보편적 접근을 위해 취한 포괄적 장치인 셈이다. 이후 개인의 성윤리, 혼외정사, 유전자공학과 성, 에이즈, 콘돔사용문제, 성폭력, 심지어 난민촌에서 구호요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난민여성들의 성폭력 문제 등이 인권차원에서 제기되었다.

 

WCC가 다룬 성 문제는 인간의 성 전반에 관련된 것이고 동성애 문제는 주로 이 문제가 사회적 문제화되고 있는 북미나 유럽에 의해 제기되는 현실이며 여기에 대한 남반구 교회는 대부분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분열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여서 WCC안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문제이다.

 

 

맺는 말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고 완벽했던 교회는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묘사된 교회이다. 그러나 이 하나 된 아름다운 교회는 사도행전 5장부터 분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이 교회의 분열을 그대로 방관하지 않았다. 초대교회가 문화의 차이, 인종의 차이, 교권의 차이, 신학적 차이 등 여러 요인으로 계속 분열해 나갈 때 사도들은 예루살렘공의회를 소집하고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함으로 이방인선교에 나서게 되었다. 교회들의 공의회는 이렇게 끊임없이 교회들이 하나 되어 공동선교에 동참하기 위한 교회들의 노력이다.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는 세계교회뿐 아니라 한국교회도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동선교, 공동봉사에 나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3. 5. 4. 박성원(영남신학대학교 교수, WCC중앙위원), 이형기(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공동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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